김영재, 라인 CTO
한 회사의 CEO는 저마다 다른 스타일이 있기에, 그에 따른 역할도 다릅니다. 관리에 강한 CEO가 있는가 하면, 영업에 강한 CEO도 있습니다. 가슴 설레게 하는 비전을 말하며 직원들의 사기를 지속적으로 달아오르게 하는 CEO가 있는가 하면, 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끌고 직원 복지를 꾸준히 향상시키는 CEO도 있습니다.
기술 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어느 한 명의 이미지만 생각하며 ‘기술 임원은 이래야지’라고 생각하지만, 회사마다 기술 임원의 스타일과 그로 인한 효과는 다릅니다. 단지 개인의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고 회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개발자가 한 명도 없던 회사이지만 이제부터 기술력에 힘을 쏟겠다는 의미로 기술 임원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개발력이 우수한 누군가를 모셔온다면, 그 사람은 개발보다는 현재의 기술 수준을 파악하고 유능한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데에만 몇 개월을 꼬박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과제나 상황, 개인의 스타일이든 상관없이 한 가지 공통점은 있습니다. 회사에 기술 임원 자리가 있다는 것은, 기술력을 회사의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기술 임원의 목표는 어떤 과제나 상황, 개인의 스타일에 상관없이 자신의 역량으로 회사의 기술 가치를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기술 임원도 결국 개인이므로 각자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합니다. 각기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 회사의 발전에 기여합니다. 제가 ‘성격’이나 ‘강점’이 아닌 ‘스타일’이라고 다소 가볍게 표현한 이유는, 유능한 기술 임원은 회사의 상황과 과제에 따라 계속 변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더라도, 지속 가능한 회사의 가치를 만들려면 스스로의 스타일은 계속 변해야만 합니다.
작년엔 경찰의 유니폼을 입고 비용 절감을 위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단속하고 통제했다면, 올해에는 파일럿의 유니폼을 입고 목표까지 안정감 있게 직원들이 산출물을 내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회사가 지금 풀고 싶은 과제에는 알맞은 임원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맞지 않는 임원이 될 뿐입니다. 2년 동안 기술 향상 없이 비용만 절감하는 기술 임원은 회사나 이사회가 기대하는 산출물을 제때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임원은 계약 종료가 되겠죠.
그렇다면 기술 임원을 어떤 스타일과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윌 라슨의 엔지니어링 리더십』의 3장, 8장, 12장에는 저자, 윌 라슨의 관점으로 스타일이 소개되어 있으니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자의 관점 외에 여기서는 저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유형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기술 임원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유형의 기술 임원은 높은 기술력을 가지며, 프로그래밍이나 연구 개발을 아주 적극적으로 수행합니다. 회사 내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엔지니어라는 데에 이의가 없습니다.
장애가 날 때 디버깅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코드 리뷰 시 함께 참여하기도 합니다. 팀원들에게 기술적 영감을 주고, 기술적 성장을 촉진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저도 스타트업에서 근무할 때는 이와 같은 유형의 기술 임원이었습니다. 10명 이내의 스타트업 CTO는 거칠게 말해서 ‘기술 팀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초기에 합류하는 기술자들도 대체로 CTO에 대한 동경과 존중감으로 입사하므로, 그 환상(?)을 유지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시스템의 구조도 어느 정도 갖춰지면 이 유형은 점차 줄어들고, 의도적으로 줄일 필요도 있습니다. 그때까지 자신보다 뛰어난 기술자들을 발굴하고 육성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스스로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기술 개발에 참여하는 역할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지만, 꼭 말하고 싶은 점은 역할을 줄일 뿐이지 절대로 그만두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개발자라면 절대로 코딩을 손에서 놓지 마시길 바랍니다. 조직의 규모와 상관없이 현장감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서 현장의 팀원들에게 공감과 존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유형의 기술 리더는 주로 거버넌스와 프로세스 개선에 집중하며, 좋은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씁니다. 조직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개선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협업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둡니다. 또한, 개발자들이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는지는 깊게 관여하지 않고 방임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엔지니어들의 꿈은 자원이 무한히 있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때 누구에게도 허락을 받지 않고, 실패해도 계속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로운 놀이터라고 해도 영역과 한계는 정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회사의 규칙을 암기하고 행동할 수는 없으므로, 시스템에서 제한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상장 회사라면 감사로부터 내부 통제가 적절하게 이루어지는지 확인받을 필요도 있습니다.
이 유형의 기술 임원은 직원의 창조성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팀에게 주는 동시에 회사로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제약을 설명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씁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회사에서는 여러분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가장 흔한 예시로 개인정보 취급과 데이터 활용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데이터를 쉽게 조회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지만, 이를 위해 접근 권한과 데이터의 마스킹은 정해진 사내 시스템만 사용하도록 통제해야 합니다. 이 시스템을 쉬운 UI와 좋은 성능으로 제공하면, 직원들이 ‘그냥 DB에 접근해서 쿼리할래요’ 같은 위험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 유형의 기술 임원은 투자와 비용 대비 효과, KPI에 매우 민감합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어느 정도의 기간을 가지고 공수 견적을 보며 그만한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사업적인 성과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며, 수치적인 임팩트를 내는 것에 집중합니다. 조직이 재정적으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우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합니다.
빡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회사의 사업적인 목표와 완벽히 일치하여 직원들이 움직이고 그로 인해 회사 외부의 시선에서 경제적으로 높은 성과를 달성했다면 (예를 들어 시장 1위, 영업 이익 초과 달성, 주가의 전고점 돌파 등) 직원들의 사기는 위의 두 유형보다 높으며 충성심도 견고하게 유지됩니다.
이 유형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앞선 두 유형보다 인재의 중요성이나 품질도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외주가 만들든 직원이 만들든 제때 산출물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유형이 기술 임원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회사의 지속 가능성이 중요해지면서 경제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이 유형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회사가 달성해야 할 목표 속에 꼭 필요한 프로젝트와 이를 만드는 기술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씁니다.
기술 임원은 각 회사의 상황마다 위의 세 유형의 비율이 조금씩 다를 뿐 어느 한쪽에만 완전히 치우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만일 하나의 유형에만 치중되어 있다면 실상은 팀장 정도이지만 어쩌다 보니 임원의 자리에 앉아 있을 뿐, 회사의 지속 가능성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하는 기술 임원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각기 다른 유형의 기술 임원은 서로 다른 강점과 역할을 가지며, 스스로를 꾸준히 바꿔 가고 협력하여 조직의 목표를 달성합니다.
여러분의 어제는 그리고 오늘은 세 가지 유형 중에서 어디에 가까운가요? 자신이 현재는 각각 어느 정도의 비율인지를 생각하며 미래를 설계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약 450여 명의 프로덕트 팀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하고 있는 일을 각 유형에 맞추어 간략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그 규모와 견적 및 그에 따른 기대 효과를 보고, 아키텍처의 변화를 살피면서 영향을 받는 컴포넌트마다 어떤 직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파악합니다.
우선 ‘최고의 기술자’ 유니폼을 입습니다. 아키텍처를 살펴보며 성능이 낮아질 우려가 있는 데이터베이스 기술을 사용했다면 리서치 자료의 링크를 주며 바꾸도록 지시합니다. 예상되는 트래픽과 응답 속도를 계산하여 캐시 레이어를 하나 추가 하도록 합니다. API에 기능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파이썬으로 테스트 코드를 작성하고 팀에 공유하여 기능을 보강하도록 합니다.
그다음 ‘놀이터 건축가’의 유니폼을 입습니다. 로깅과 모니터링 SaaS를 도입하여 릴리스할 때마다 적절한 알림과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만듭니다. QA를 보강하여 릴리스할 때 개발자들이 미처 놓친 기능을 보완하도록 합니다. 서비스에 필요한 날씨 정보가 한 곳에서 두세 곳으로 넓어지는 걸 보며, 날씨 정보 회사들의 데이터 이용 범위 및 규약, 품질을 비교하는 한편, 공통 플랫폼 팀에게 날씨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도록 하여 관리를 일원화합니다. 이로써 어떤 서비스든 날씨 정보를 쉽게 도입할 수 있게 합니다.
끝으로 ‘이성적인 성취가’의 유니폼을 입습니다. 만약 한 직원이 개인의 취향으로 너무 많은 컴포넌트를 담당하고 있다면, 컴포넌트 하나에 집중할 때 당신의 커리어가 더 나아질 수 있고 회사로서도 이 프로젝트를 할 때는 얼마 정도의 수익이 예상되므로 더 크게 공헌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조정합니다. KPI에 민감한 컴포넌트에는 담당자를 지정하고 반년간 KPI 하나만 집중하여 향상시키도록 합니다.
이처럼 기술 임원의 역할은 한 프로젝트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변하며, 각기 다른 상황에 맞춰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 임원이 되려면 기술은 기본이며 경영 능력까지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술적 지식과 재정적 이해 그리고 조직 운영의 능력을 통합적으로 적용하면 성공적인 기술 리더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더 나은 기술 리더, 나아가 한 회사를 책임지는 기술 임원으로 도약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 윌 라슨의 엔지니어링 리더십』한국어판 특별 부록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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